환수 문화재
-
- 문화재현황
- 환수 문화재
재단은 2012년 7월 설립 이후 국외소재문화재 중 문화재적 가치가 크거나 불법 · 부당반출 가능성이 의심되는 문화재를 발굴하여
재단이 직접 또는 관계기관과 협의를 통해 1,204건 2,482점을 국내로 환수 조치하였습니다. [2023. 8. 31. 기준]
현전 사례가 거의 없는 19세기 후반 104위 신중도. 1891년 화승 민규(玟奎)가 제작한 불화로, 범어사 극락암에 봉안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정된 구도를 갖추고 있으며 존상의 표현이 우수하다.
청동기시대에 제작된 다양한 형태의 마제석촉 일괄. 한국 고고학사의 연구 자료로서 환수하여 전시 및 연구 소재로 활용 가치가 있다.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1841-1905)이 서울의 미국인 군사 교관 존 G. 리에게 보낸 편지. 1910년 이전 미국 공관원이 남긴 현존 유일의 서한이다. 박정양의 개인기록인 『미행일기(美行日記)』 속 편지 발신 기록과도 일치한다.
‘중화궁’에서 사용한 조선 왕실 인장. 서수(瑞獸) 모양의 손잡이에 인면(印面)에는 ‘重華宮印(중화궁인)’이 전서와 예서를 혼용한 독특한 서체로 조각되어 있다. 중화궁은 창덕궁 내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분원 관요(官窯)에서 제작된 백자사각호. 바닥면에 ‘이동궁’이라는 명문이 있다. 이동궁은 정조의 딸 숙선옹주(1793-1836)의 궁가(宮家)로 추정된다. 문헌이 아닌 실물 자료로 ‘이동궁’이 나타난 사례는 극히 희소함.
근대 서화가 변성규(1890-1962)의 작품. 배접 없이 낱장으로 분리되어 있으나 병풍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변성규는 근대 유명화가인 변종하(1926-2000)의 부친이다.
산수도 총 8점 중 1점에서 조선 말기 화원 화가인 조석진(1853-1920)의 서명과 인장을 찾아볼 수 있으나, 조석진의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다.
한남서림이 1926년 제작·판매한 능행도 인쇄본(국립고궁박물관 소장)과 내용·형식이 거의 동일하며, 한남서림 1926년본과 같이 총 10폭으로 제작되었을 것이나 6폭만 남음. 궁중생활을 묘사한 인쇄본이 유통된 시대상을 보여준다.
조선 말기 대학자이자 의병장으로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된 척암 김도화(1825-1912) 선생의 문집. 동일 문집을 간행한 책판 중 국내에 소장된 19장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한국의 유교책판>에 포함되어 있다.
16세기 말~17세기 초 조선 사대부 묘에 조성된 석물 한 쌍으로 판단되며, 조선시대 문인석 대부분이 입을 다문 엄숙한 형태인데 비해 한쪽이 입을 벌린 채 쌍을 이룬 매우 희귀한 사례로, 학술적‧조형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다.